"제 작업실에 한번 데리고 오시죠"
2003년 찬 바람이 싸늘하게 옷깃을 스치던 초겨울쯤이었을게다.
아니면 낙엽이 우수수 단풍이 한창이던 가을쯤 같기도 하다.
결국 들키고 말았다.
그 때 광남 초등학교 4학년, 3학년 아들과 딸이 있었다.
아들은 적벽대전에서 벌어지는 전투 장면을 잘 그렸는데,
30분 정도면 화살에 맞고 쓰러져 있는 조조의 병사들이 족히 3000명쯤이 등장한다.
스케치북 한 장에 각기 다른 포즈를 한 병사들이 화살과 창에 맞고 쓰러지거나
쓰러뜨리거나 하고 있는데, 제각기 표정도 다르다.
딸은 특별히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미술을 일부러 가르친 적도 없다.
10살짜리 여자 아이가 심심했던지
한 여름에 거실에서 낮잠을 자는 할머니와 아버지를 그렸다.
여름용 내복 포장 상자와 뚜껑 안쪽 마닐라지 흰색 여백에 연필로 그렸다.
그린지 며칠 뒤에 우연히 발견한 것은 애 엄마였는지 애 아빠였는지 잘 모른다.
아무튼 신기했다.
환갑 정도의 할머니는 그림 속에서 살아있는 것 같고,
또 다른 상자 그림 속의 애 아버지는 뭔가 느낌이 좋았다.
처음 본 순간의 느낌을 지금도 기억한다.
"피카소가 그린것 같다"
야근이 잦은 그 시절 구의동 사무실에서 점심 식사를 할 때면
아이 엄마와 아버지는 상자를 몰래 꺼내 보면서 식사를 했다.
그 시절 고슴도치 부부의 가장 큰 행복이었을 것이다.
그런 어느날 미술대학 교수님에게 들킨 것이다.
우리 회사에는 POP ART를 하는 작가 고객 20~30 여분이 작품 준비를 위해 자주 방문하셨다.
그 중에는 서울미대 학장님도 계셨고,
유럽 비엔날레 대상 작가 분들도 계시다.
재능이 뭔지도 모르고 있을 때라
그냥 몇 분에게 보여드리고 자문을 받은 뒤
두어달 후 우리 아이의 인생이 정해졌다.
그냥 한번 배워보라고 소개받은 선생님 화실에 보냈는데
그 선생님이 너무 잘 하셨는지, 아이는 그대로 그림 공부를 하게되었다.
다행히 아이는 지금까지도 그림 그리기가 싫다고 한 적이 없다.
그 아이가 이제 대학을 졸업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