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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뚝섬 한가위

by 르미 posted Sep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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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Km쯤 달리면

몸안의 에너지가 빠져나가 힘이 부치는 구간을 만나게 된다.

힘든 것이 아니라, 힘이 없어 힘을 쓸 수 없는 구간이다.

 

몸이 허락하는 최대의 스피드로 장거리를 달리다보면 만나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몸은 비상 시스템을 작동시켜서

극단적으로 힘든 그 구간을 정신적으로 버티다 보면,

어느새 갑자기 힘든 것을 모르고, 없던 힘이 생겨나서

몸이 가벼워지고 무아, 무상의 상태로 달리게 된다.

스피드 게이지를 보면 대개 약 5Km/h 이상 올라가 있다.

 

일명 도파민이 나오는 것이다.

 

매일 놀라울만치 먼 거리의 마라톤, 자전거 등을 즐기는 분들이

아마 그 도파민과 연관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자연이 우리 몸을 통해 주는 합법적 약물? 

 

그 70Km 가까이 달리다 뚝섬 근처에서 한가위 달을 만났다.

곧게 쭉 뻗은 자전거 도로 위를 가득 채우는 커다란 달이 

무거워진 몸을 옮기던 나를 멈추게 했다. 

8월 뚝섬 한가위.jpg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달을 향해 셔터를 작동시켜본다. 

맘처럼 잘 안된다.

이리 저리 설정을 바꿔봐도, 

휴대폰으로는 그 한아름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담을 수 없다.

 

위의 사진은 그 다양한 시도 중 베스트 샷 모드로 담은 것이다. 

해상도가 낮아지지만, 그나마 제일 낫다.

 

사실,

 

어릴적 저 정도 달은 매달 보고 자랐다. 

가로등이 없던 시골 마을에서

저 달빛에서 별 일을 다 했었다.

그 만큼 밝고 컸다.

 

서울의 달은 작고 왜소하고 존재감이 없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달과 사이가 멀어졌다.

아마도 하늘 전체를 밝히는 도회지의 불빛 때문이리라.

 

그래도 가끔씩 미사리에서 서울로 오는 한강변 자전거 퇴근길에서

만나는 보름달은 제법 어린 시절의 달을 닮았다.

그래도 가로등이 켜지면 다시 작아진다.

 

그런 경험으로 가장 멋지고 환하면서 큰 달을 언제 만나는지 알게 되었다.

 

초저녁

 

길가의 가로등이 켜지기 직전

가장 낮은 위치에서 떠오르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달.

 

아마도 내가 서울에서 보는 가장 크고 선명하고

살아있는 달일 것이다.

 

어제 뚝섬에서 본 달이 바로 그랬는데,

아쉽게도 자리 잡고 휴대폰 모드를 돌려보는 사이에

가로등이 켜지고 말았다.

 

그래도 한강변 자전거 도로 옆의 

코스모스와, 금계국, 억새가 

2018년 가을의 시작을 알려주고 있었다.

올 가을 단풍이 무척 고울 것 같다.

 

올해에도 자전거로 춘천 소양강 댐을 다녀올 예정이다.

의암댐 우드데크에서 호반의 그 단풍길을 달리는 것은

한 해 여행 중 참으로 즐거운 일이니까.

 

이 글 읽는 분들과 

저 밝고 포근한 보름달의 풍성함과 넉넉함,

그리고 2018년 가을의 여유로움을 함께하고 싶다.

 

^^